랜딩 페이지
10여년 전에 일본에서 온라인 게임 회사에 들어와서 담당했던 업무는 게임의 웹 사이트를 만들고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일본에서 서비스하는 게임들의 웹사이트는 매우 원시적인 형태가 많았습니다. CGI를 쓰지 않고 HTML을 만들어서 이어 붙이는 곳도 많았고, 문의하기를 누르면 웹 페이지에 입력 폼이 나오는게 아니라 메일 클라이언트가 실행되는 곳들도 많았습니다. 다 설명하자면 너무 길고, 하여간 한국에 비해 4~5년 이상 뒤쳐진 원시적인 형태의 사이트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이트들의 후진성보다도 저를 더욱 당황하게 한 것은 바로 랜딩 페이지(Landing page)의 존재였습니다.
랜딩페이지란 온라인 광고(배너/키워드/바이럴 등 링크를 지닌 광고)에 노출된 잠재고객이 광고물을 클릭했을 때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광고주가 의도한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 처음 접하게 하는 페이지를 의미합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E-커머스 영역에서 일반화 되어 있으며, 흔히 ‘이벤트 페이지’라고 불리는 형태의 구매 유도용 페이지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온라인 게임들도 대부분이 배너나 리스팅 광고를 클릭하면 게임 공식 사이트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해당 광고와 연결된 랜딩 페이지로 이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러한 랜딩 페이지를 일본어로 “받아들이는 페이지(受けページ)”라는 용어로 불렀습니다.
온라인 게임의 랜딩 페이지의 구조는 매우 단순합니다.
우선 화면의 절반 정도를 게임 캐릭터의 고퀄리티 일러스트가 차지하고, 화면의 1/4 정도는 될 것 같은 커다란 크기로 “지금 등록하기(今すぐ登録)” 버튼이 있습니다. 그리고 폰트 사이즈 120은 족히 넘을 것 같은 크기로 “평생 무료(生涯無料)” 같은 문구가 써 있고, 눈에도 안 띌 정도로 아주 조그맣게 “공식 사이트는 여기로(公式サイトはこちら)” 버튼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화면을 하단으로 스크롤하면 게임의 스크린샷이나 게임 내의 직업들이 커다란 일러스트와 함께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일 밑에는 반드시 해당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필요한 PC사양이 상세히 표기되어 있습니다.
혹은 “캠페인 실시중!(キャンペーン実施中!)” 같은 문구와 함께, “지금만 다이아 10개를 받을 수 있어(今だけ!ダイヤ10個貰える)”라고 큼지막하게 써 있고, 그 옆에는 화면의 1/4쯤 되는 크기로 “지금 받으러 가자(今貰いに行こう)”라는 버튼이 있습니다.
대게가 이런식입니다. 게임 시스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세계관이나 스토리를 설명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대게 일러스트와 유도용 버튼, 그리고 스크린샷 몇 개가 전부였습니다.
당시에 잘 나가던 게임들은 모두 그런식의 랜딩 페이지를 거쳐서 공식 사이트로 연결되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이런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고, 같이 일하던 디자이너들도 이런 랜딩 페이지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화면의 1/4을 차지하는 버튼을 넣게 되면 매우 촌스러운 디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오랜 기간을 생활하면서 일상적으로 검색이나 인터넷 쇼핑도 일본 사이트에서만 하다보니 어느새 저도 그런 랜딩 페이지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한국은 온라인 광고를 클릭할 경우에 곧바로 컨텐츠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은 인터넷 보급 초기부터 랜딩페이지를 통해 중요한 정보를 심플하게 알려주고, 페이지 중간 중간에 콜투액션(Call To Action, CTA)을 활용해 실제 컨텐츠로의 전환(Conversion)을 유도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본에서 온라인 광고를 클릭하면 해당 상품이나 서비스의 특정 기간 한정의 캠페인용 랜딩 페이지로 이동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던 것입니다.
랜딩페이지에는 크게 2종류가 있습니다. 판매 유도를 위한 ‘클릭 유도 랜딩 페이지(Click-Through Landing Pages)’와 정보 수집을 위한 ‘리드 제네레이션 랜딩 페이지(Lead Generation Landing Pages)’인데요. 일본에서는 전자인 CTLP만 기형적으로 발전되어 있습니다. 개인정보 제공을 꺼려하는 일본 유저들의 성향 때문에 리드 제네레이션 랜딩 페이지는 일본에서는 찾아보기가 매우 힘듭니다.
당연히 온라인 게임들의 랜딩 페이지도 상품의 판매를 유도하기 위한 전형적인 클릭 유도 랜딩 페이지입니다.
랜딩 페이지는 서구권에서는 상당히 일반화되어 있는 개념인데, 일본에서는 일반화라기보다는 일상화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기에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일본은 찌라시 영업이 매우 일상화 되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 주상복합형 건물에 살지 않는 이상 3일만 지나도 우편함이 찌라시로 가득차게 되는데요. 대부분의 찌라시는 그냥 버리게 되지만, 가끔 도움이 되는 것도 있기 때문에 내용 정도는 확인을 하고 버리게 됩니다. 이때 눈길을 끄는 찌라시는 끝까지 읽고 버리고, 가끔은 버리지 않고 집에 보관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랜딩 페이지는 웹 찌라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찌라시에 문의 전화번호가 쓰여 있듯이, 랜딩 페이지에는 구매로 연결되는 버튼이 있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일본이 유독 온라인 광고 단가가 높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리스팅 광고(검색 키워드 광고)나 배너 광고 등 비성과형 광고에서 광고 매체들은 CTR(click-through rate), 즉 클릭 회수로만 광고를 평가합니다. 유효하지 않은 클릭을 걸러내기는 하지만, 유저의 전환율에 관계 없이 클릭에 따라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럴 때는 광고를 클릭하고 들어온 유저의 이탈을 막고 전환율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전환율을 높인다는 것은 곧 획득 단가를 낮춘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심한 경우 광고비 50만엔을 지불했는데 컨버전 건수가 50건에 불과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컨버전 건수를 100건으로 늘리기 위해서는 보통 광고비를 50만엔 더 지불해야 하겠지만, 단순히 컨버전율만 2배로 올려도 단가를 낮출 수 있습니다. 광고 단가가 워낙 높기 때문에 컨버전율을 10%만 향상시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왠만하면 랜딩 페이지를 중간에 삽입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 시대에는 바로 다운로드 할 수 있는 스토어 링크로 이동시키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일본 게임회사들은 스마트폰 게임에서도 여전히 랜딩 페이지를 거쳐서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로 이동하도록 유도하는 곳이 많습니다. 스토어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다운로드를 받겠다는 의지를 굳히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집행한 광고로부터 무효한 클릭을 걸러내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