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적인 감각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게임 장사하는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일본적인 감각이란 무엇일까?
일본에서 게임 혹은 웹 서비스를 하다보면 굉장히 큰 혼란을 겪게 된다. 특히 게임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일본을 타깃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잘 안 되는데, 일본은 신경도 안 쓰고 만든 것이 매우 잘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과연 일본적인 감각이라는게 있기는 있는거야?“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그럼에도 오늘도 한국에서 일본에 팔림직한 게임을 만들겠다고 하는 많은 개발사들이 일본식, 일본 스타일, 일본적인 게임을 만들고자 땀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만드는 컨텐츠들은 전혀 일본 스타일도 아니고 일본적인 감각과도 달라서 결과적으로 시장의 외면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그럴까?그것은 그 반대를 놓고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 서비스되는 일본산 게임이 어떤 모습인지를 생각해보자. 굳이 게임을 이야기할 것도 없다. 일본에서 인기 있는 한류 드라마, K-POP 가수 등을 보면 한국에서 인기 있는 것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일본인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드라마나 가수가 한국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없다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곤 한다.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만약 일본에서 한국을 타깃으로 드라마를 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일본 자본으로, 일본인 각본가와 일본인 연출자가 한국인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드라마를 만들었다. 이 드라마는 한국에서 잘 팔릴까? 이런 컨텐츠는 잘 팔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면 그건 한국 배우들이 나올 뿐인 일본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게임도 결과적으로는 이것과 똑같다. 트랜디한 그 무엇을 만들어내겠다고 한다면 그것을 판매할 마켓, 즉 로컬 시장의 트랜드를 완전히 읽고 있어야 한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현지인이 아니면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리 현지에 10년, 20년을 산 외국인이라고 할지라도 현지인과 동등한 수준의 트랜드 리딩 능력은 없다.
그런데 간혹 트랜드에 딱 맞아 떨어져서 대박이 나는 컨텐츠가 나오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시장의 가능성으로 오독한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당연한거지만 2번째 3번째 대박은 없다. 그건 대개 현지 기업들의 몫이다.
로컬 시장의 개성이 매우 강한 일본에서는 트랜디한 그 무엇으로 대박이 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이런 시장에 안정되게 진입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트랜디하지 않은 그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지극히 협소하지만 검증된 니치 마켓이 존재하는 틈새로 접근해야 한다.한국 게임이면 그냥 한국 게임처럼 보이는 편이 검증된 유저들을 모으는 지름길일 수 있다. 한줌밖에 안 되어 보여도 객단가도 높고 아주 우량한 소비자들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만 보면 일본인들은 혐한이 많으니까 한국거 티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럼 일본적인 감각, 일본 스타일, 일본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분명히 일본 스타일이라는 것은 있다. 그런데 한국인 생각하는 일본 스타일은 그 안에 존재하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한국의 게임 개발자가 바라보는 일본 스타일 역시 매스 마켓이 아닌 니치 마켓의 일부다. 그런데 그 니치 마켓은 갑툭튀가 용납되지 않는 영역이다.소비자가 게임을 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래픽이 좋아서, 그 시리즈의 팬이니까, 제작사를 좋아해서, 게임 방식이 획기적이어서, 소재가 마음에 들어서 등 많은 요인들이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런 경우가 있다. “일러가 마음에 들어서“, “성우가 마음에 들어서“. 별거 아닌거 같아도 굉장히 크게 작용한다. 앞서 말했듯이 여러분이 만들고자 하는 일본식 게임은 니치 마켓에서도 가장 마니악한 계층을 상대로 하는 시장이니까.
그런데 여기서 “일러가 마음에 들어서”라는 이야기를 순수하게 그 그림이 마음에 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일러가 마음에 들어서”는 순수하게 그 그림이 마음에 든다는 의미가 아니다. 대개 이것은 일러를 그린 작가에 대한 팬덤에 가깝다. 그 팬덤은 상당히 장시간에 걸쳐서 형성된 것이다. 해당 작가가 그려왔던 일러가 쓰인 게임, 라이트 노벨, 애니, 만화 등. 이것은 성우도 마찬가지고, 게임 음악을 담당하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시나리오를 쓴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이곳은 이런 팬덤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시장이다.
한국의 오타쿠 성향의 게임 개발자들이 동경하던 대중적인 감성으로 만들어지던 일본 애니, 게임 같은 것은 1990년대에나 만들어지던 것이다. 2015년의 일본에서는 이미 과거의 역사에 불과하다.한국에도 번역서가 출간되었지만 2001년에 아즈마 히로키라는 사회학자가 낸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책에는 「데이터베이스 소비」라는 개념이 나온다. 지금의 일본의 오타쿠 컨텐츠 시장은 이러한 데이터베이스 소비가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된 상태다.
데이터베이스 소비의 가장 큰 특징은 작품 외적인 관계를 소비한다는 점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크리에이터가 참여한 다른 작품을 찾아보고, 거기에 참여한 또 다른 크리에이터의 작품을 찾아보면서 연쇄적으로 컨텐츠를 소비하는 형태다.
한국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지만, 일본의 한류붐이 폭발한데는 이러한 데이터베이스 소비 성향이 크게 작용했다.
A라는 K-POP 그룹을 좋아해서, 그 그룹의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같은 소속사의 B 그룹을 알게 되고, B그룹의 멤버가 출연한 드라마를 알게 되어서 찾아보고, 거기 출연한 또 다른 C 그룹의 멤버를 알게 되어서 C그룹의 음악을 찾아보는 자연 발생적인 데이터베이스 소비가 K-POP 팬덤을 확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음악은 상대적으로 크리에이터가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오타쿠 문화와 비슷한 소비형태를 보일 수 있었지만, 크리에이터가 쉽게 노출되지 않는 게임은 조금 다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냥 일본 스타일에 맞춰서 만든 게임 1개 들고 와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매우 희박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작품 외적인 관계 형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게임을 팔겠다고 하면 오히려 트랜디하지 않은 그 무엇이 더욱 절실히 필요해진다. 다시 말해서 오리지널리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오리지널리티라는 것은 게임성, 시나리오, 일러스트, 음악 등 모든 요소에 적용된다. 일러스트가 한국티 풀풀나도, 중국티 풀풀나도 괜찮다. 그게 그 게임만의 오리지널리티라면 오히려 그것이 더 크게 어필할 수 있다.
물론 정말로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있지 않아도 된다. 여기서 말하는 오리지널리티는 표면적인 오리지널리티다. 일본인이 아직 체험 해보지 못한 유저 경험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대다수의 한국 게임 개발사들은 이것을 하지 못한다. 그 대신 일본적인 그 무엇을 자꾸 넣으려고만 하다가 일본인이 보기엔 마냥 어설프기만한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
기존의 한국 온라인 게임을 해오던 유저들이 바라는 건 오히려 한국과 동등한 수준의 서비스, 동등한 속도의 업데이트, 동등한 수준의 밸런스일 경우가 많다. 왜냐면 자기들은 그냥 그 게임이 하고 싶은 거지, 어설프게 일본인 비위 맞추는 아이템 몇개를 원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디아블로2」에 한국 아이템 세트 들어갔다고 별로 기쁘지도 않았던 기억을 되살려 보자.
모바일 게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 있는 그래픽, 일관성 있는 캐릭터, 일관성 있는 기획을 통한 오리지널리티 있는 게임성, 그리고 성의 있는 번역과 운영이다.
일본어에 仕上げ라는 말이 있다. 한국어로 가장 적절하게 번역하자면 만듦새다. 여기에 대해 얼마나 집착했는가가 곧 가장 일본적인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쯤에서 나오는 질문.
“아니 XXX같은 게임은 정말 X허접하게 만들었던데 일본에서 왜 그렇게 떼돈을 버는거죠?”
답은 간단하다. 그건 일본 사람이 만들었으니까.
결론은 디테일에 얼마나 신경썼나 하는거죠. 사소한 것 하나 하나 끝까지 파고드는 식으로 손을 봐야 먹혀든다고 봅니다.
그렇지요. 결론은 디테일입니다. 디테일이 나오려면 바닥부터 만들고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데, 다들 그렇게 안 하려고 하니까 실패하는 것 같아요.